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161)
어머니의 섬 / 2022 한국수필 작가회 어머니의 섬 강현자(khj5330@hanmail.net) 육거리 시장에 갔다. 참 오랜만이다. 생각보다 말쑥해진 시장 풍경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왠지 낯설다. 전에 없던 골목이 더 생긴 걸까? 예전의 기억을 더듬느라 걸음이 자꾸 뒤처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된장 끓는 냄새를 따라간 식당에 둘러앉았다. 보리밥에 수다를 함께 넣어 쓱쓱 비비며 모처럼의 외출에 환호했다. 너무 흥분한 탓일까.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민망해진 우리는 얼른 주인에게 사과했다. “괜잖어유~ 아직 지구대에서 연락 안 왔슈.” 하며 쥔장은 농으로 받아넘긴다. 아, 지구대. 맞아, 그때도 육거리 시장이었지. 여기 어디쯤이었을 게야. 두려움에 떨던 여섯 살의 어느 날이 가슴에 와 앉는다. 육거리시장 근처 남문로에서 살 때였다...
나르시스가 기다린 님프 / 수필과 비평 2022 11월호 나르시스가 기다린 님프 오해와 진실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헤라의 저주가 아니었다면 에코는 사랑을 이루었을지 모른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에코도 나르키소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마음과는 다르게 메아리만 들려줄 수밖에 없던 에코가 나르시스에게 하려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냥 ‘(사랑)해요 해요 해요…….’ 뿐이었을까? 메아리만 들은 나르키소스가 에코의 마음을 알 리 없다 . 흰 눈이 소복이 내리던 어느 날 돌계단 아래 무언가가 파르라니 눈짓을 하고 있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나만큼 급했던지 벌써 나와 떨고 있다. 이파리 끝은 점점 누렇게 말라가고 내가 오가며 멋모르고 짓밟은 흔적도 역력하다. 서둘러 나오더니 상처투성이다. 안쓰럽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저러다 그냥 ..
발걸음 에세이/한국수필11월호 염원을 담다 -통일대탑 보탑사 삼층 목탑- 목탑은 분명 꽃술이었다. 연곡리 보련산을 나지막이 둘러싼 산봉우리가 연꽃잎이라면 목탑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술임에 틀림없다. 연꽃 피는 계절에 보탑사에 갔다. 보련골 계곡을 따라 이미 여름이 짙어간다. 전에 있던 연꽃밭을 찾았으나 잡풀만 무성해 못내 아쉬웠다. 보탑사를 둘러싼 보련산 능선이 어우러져 연꽃 형상을 하고 있으니 나는 이미 연꽃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충북 진천군 연곡리 보련산 자락에 있는 보탑사는 한때 사진에 빠져있을 때 카메라를 둘러메고 철마다 찾던 사찰이다. 1996년에 창건하여 역사가 깊지는 않다. 고려시대 석탑 부재들을 모아 세운 삼층석탑으로 보아 이미 절터였음을 짐작케 한다. 다른 사찰처럼 고색창연한 모습은 아니지만 이른 봄부터 진사들..
화(和)로 끓어나는 수제비 / 2022 한국수필 10월호 촤르르 쏴아…. 처마 밑으로 파고드는 소나기가 옹송그레 일어선 솜털 사이로 끈적한 열기를 가셔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은근히 생각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양재기를 꺼냈다. 냄비에 멸치를 넣고 감자를 어슷하게 썰어 국물을 낸다. 봄 가뭄에 유난히 힘들어했던 감자다. 밭두둑이 딱딱하게 굳고 잡풀마저 생장점이 머뭇머뭇했다. 감자꽃이 피고 한참 몸피를 부풀려야 할 때 한 달 이상을 비가 내리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호스를 끌어다 한두 시간씩 물을 댔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한줄기 비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저러 겨우 캐낸 감자니 어찌 애틋하지 않으랴. 펄펄 끓는 물 속에 들어서야 겨우 긴장이 풀리는가 푸슬푸슬 제 몸을 부스러뜨린다. 이 순간을 위해 봄부터 그렇게 긴 가뭄을 견뎌왔던가. 제 한 몸 찌고 말려서..
대문 즘 열어봐유
한국수필문학회심포지엄/몽골 지난 8월 24일부터 4박 5일간 한국수필문학회에서는 해외 심포지엄 몽골편이 있었다. 계획했던 해외 심포지엄을 코로나로 미루다 3년 만에 이루어졌다. 주제는 자연과 문학/문학과 자연에 관한 것이었다. 몽골의 자연을 돌아보며 아직 훼손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여 '개발'이라는 단어의 양면성을 생각했다. 너른 벌판과 완만한 능선을 품은 산들, 파란 하늘에 몽글몽글 피어오른 뭉게 구름... 몽골은 모든 것이 곡선이었다. 칭기즈칸 시절의 야망과 호전 정신은 간데없고 느릿한 자연환경만이 그들의 호시절을 상상하게 했다. 낯설지 않게 자주 만나는 한글과 그들이 말하는 서툰 한국어를 스쳐 들으며 우리의 위상을 피부로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영어에 열광하고 알파벳이 써 있는 티셔츠를..
주인은 나만이 아니었어/수필미학 2022가을호 주인은 나만이 아니었어 강현자 소문은 사실이었다. 여태 한 번도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어 긴가민가했는데 오늘에야 드디어 실체를 확인했다. 대문 앞 텃밭에 물 주기를 막 끝내고 뒷정리를 하던 참이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둔탁한 소리에 몸이 불편하신 이웃집 아주머니의 전동차가 내려오나 보다 했다.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커다란 물체가 휙 하고 지나간다. 낯선 광경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바짝 따라붙어 고라니를 쫓는 백구. 둘은 필사적이었다. 제 몸집보다 큰 고라니를 쫓는 백구가 퍽이나 용감해 보인다. 가끔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나를 놀라게 했던 그 백구다. 사실 고라니든 백구든 모두 내게는 불청객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어느새 나는 백구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우리 텃밭은 동네에서도 날망에 있어 동..
내비둬유/2022.7.20 서울 사램덜언 참 이상해유. 왜 자꾸 일거릴랑 맹글어가꾸 바쁘게 사능가 몰르겄슈. 지 칭구만 해두 그려유. 걍 살어두 편할 낀디 돈을 긁어 모을라구 용을 쓰능거 같어유. 내 보기엔 그만허믄 사는 거 겉은디 그놈에 욕심이 한두 끝두 읎능게 뷰. 접때는 전화를 한 번 받었는디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할 얘기두 많었쥬. 종내는 부동산 얘기꺼정 간규. 살던 아파트를 팔어가꾸 퇴직금 받은 거랑 보텨서 역세권에 이사를 했넌디, 시세 차익이 엄칭이 많이 났대유. 그라믄서 지헌티 허는 말이, 가만히 있지 말구 지금 사는 집은 팔어서 시를 살믄서 새 아파트루 분양을 받으라능 규. 그라믄 낭중에 피만 챙겨두 그게 워디냐구유. 아주 목소리에 심이 철철 넘쳐유. 지더러 답답혀서 죽겄다능 규, 왜 그륵히 사냐구유. 가만히 생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