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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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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문학회심포지엄/몽골 지난 8월 24일부터 4박 5일간 한국수필문학회에서는 해외 심포지엄 몽골편이 있었다. 계획했던 해외 심포지엄을 코로나로 미루다 3년 만에 이루어졌다. 주제는 자연과 문학/문학과 자연에 관한 것이었다. 몽골의 자연을 돌아보며 아직 훼손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여 '개발'이라는 단어의 양면성을 생각했다. 너른 벌판과 완만한 능선을 품은 산들, 파란 하늘에 몽글몽글 피어오른 뭉게 구름... 몽골은 모든 것이 곡선이었다. 칭기즈칸 시절의 야망과 호전 정신은 간데없고 느릿한 자연환경만이 그들의 호시절을 상상하게 했다. 낯설지 않게 자주 만나는 한글과 그들이 말하는 서툰 한국어를 스쳐 들으며 우리의 위상을 피부로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영어에 열광하고 알파벳이 써 있는 티셔츠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그곳은 많이 달라져 보였다. 잃었던 향수를 다시 찾은 기분이랄까. 죽은 도시 아니 죽은 소읍에 새 생명을 불어넣듯 생기가 돌고 있었다. 옥천은 20여 년전 한때 내가 일하면서 정을 붙이기도 했던 곳이라 내게는 고향을 다시 찾아가는 느낌이다. 물론 정지용의 고향과는 질적 차원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얼룩배기 황소가 게으른 울음 우는 곳이 나는 막연하게 월전리 어디쯤이라고 상상해 왔다. 그런데 이석우 시인이 쓴 글을 보니 지용이 뛰놀던 곳은 월전리 쪽이 아니라 수북리 어디쯤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마 지용의 생가가 구읍에 있는 것으로 보아 넓은 벌 동쪽 끝이면 수북리 쪽이 맞을 것 같다. 우선 생가부터 들렀다. 소박한 담장 아래 붉은 백일홍이며 봉숭아꽃, 키 높은 해바라기가 이미 손님맞을 준비를 마쳤고 마당에..
보길도와 윤선도 고산 윤선도의 유적을 따라 보길도에 들어갔다. 조선 시조의 대표인 가 탄생한 이 곳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란 기대감이 발길을 이끌었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35분쯤 가 노화도의 동천항에 도착했다. 노화도에서 보길도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하며 풍랑을 만났을 당시의 고산을 상상했다. 윤선도는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세상을 등지려 제주도에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이곳 보길도의 황원포를 통해 들어오게 된다.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심취한 윤선도는 이곳에 거처하기로 하고 학문에 몰두하며 제자를 가르치는 등 세상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세연정(洗然停) 세연정은 윤선도가 보길도에 들어와 살 집을 마련하고 얼마 후에 마련한 정자이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뱃놀이도 하며 자연을 벗삼아..
청송 주산지를 갔는데.. 언제부턴가 청송 주산지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워낙 먼거리라서 엄두를 내기가 어려워 망설이다가 장마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왜 갑자기 맘이 급해졌는지... 마침 특별한 계획이 없는 주말인터라, 마음이 내킨김에 새벽에 출발하여 주산지의 아침을 보기로 하고 갑자기 출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