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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칼럼-강현자의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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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둬유/2022.7.20 서울 사램덜언 참 이상해유. 왜 자꾸 일거릴랑 맹글어가꾸 바쁘게 사능가 몰르겄슈. 지 칭구만 해두 그려유. 걍 살어두 편할 낀디 돈을 긁어 모을라구 용을 쓰능거 같어유. 내 보기엔 그만허믄 사는 거 겉은디 그놈에 욕심이 한두 끝두 읎능게 뷰. 접때는 전화를 한 번 받었는디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할 얘기두 많었쥬. 종내는 부동산 얘기꺼정 간규. 살던 아파트를 팔어가꾸 퇴직금 받은 거랑 보텨서 역세권에 이사를 했넌디, 시세 차익이 엄칭이 많이 났대유. 그라믄서 지헌티 허는 말이, 가만히 있지 말구 지금 사는 집은 팔어서 시를 살믄서 새 아파트루 분양을 받으라능 규. 그라믄 낭중에 피만 챙겨두 그게 워디냐구유. 아주 목소리에 심이 철철 넘쳐유. 지더러 답답혀서 죽겄다능 규, 왜 그륵히 사냐구유. 가만히 생각해 ..
우리 동네 백구 / 2022. 7.6 깜짝 놀랐다. 대문 앞 텃밭에 물 주기를 막 끝내고 뒷정리를 하던 참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둔탁한 소리에 전동차가 언덕을 내려오려니 했다. 몸이 불편하신 이웃집 아주머니가 산책을 나오셨나 인사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커다란 덩치가 휙 하고 지나간다. 말로만 듣던 고라니다. 곧이어 백구가 바짝 따라붙어 뒤를 쫓는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망연자실 바라볼 수밖에. 제 몸집보다 큰 고라니를 쫓는 백구가 오늘따라 듬직하다. 가끔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나를 놀라게 했던 그 백구다. 우리 텃밭은 동네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있어 동물들의 출입이 잦은 편이다. 고라니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짐승들의 텃밭 출입을 막아야겠기에 그물 울타리를 쳤다. 내심 든든하게 여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덩치가 제법 있는 백구 하나가 어..
착각/2022.6.22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잘났다는 착각이 있어야 자신감도 뿜뿜 솟는다. 착각은 활력이다. 망상이라면 곤란하지만 착각은 생활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대로만 산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심드렁하겠는가. 벌써 오래전 일이다. 동호회 모임이 끝나 모두 헤어진 후였다. 행사를 준비하느라 피로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날 참석했던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행사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안전하게 귀가를 잘하시라는 등, 지극히 의례적인 인사일 뿐이었다. 문자에 대한 답을 보낸 사람 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답글은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지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이 엿보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다..
동생이 왔어요/2022.4.26. 강현자 20일 만의 만남인데도 기대만큼 극적이지 않았다. “엄마!” 하면서 와락 품에 안길 줄 알았던 28개월 된 서진이는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할머니 뒤로 숨는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동안 어리광도 없이 잘 참고 기다려준 대견한 아기다. 엄마가 나서서 서진이를 끌어안고 뽀뽀를 하며 동생을 소개한다. 동생이 준 선물이라며 뽀로로 장난감을 건네자 그제야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의 모습이 낯선지 비눗방울 총을 가져와 쏘아댄다. 아기에게 그러면 안 된다 해도 소용없다. “엄마가 아가 맘마 주고 나면 서진이도 안아 줄 거야. 서진이가 조금만 기다리면 돼.” 하자 이내 총쏘기를 멈추고 제 놀잇감을 가지고 논다. 갓난아기가 젖을 먹고 트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아이와의 약속을 깜빡한 채 두런두런..
초대받지 않은 꽃/2022. 5.11. 강현자 초록이 눈에 어리어리하다. 지금도 여전히 난 녀석을 찾아 잔디밭을 헤맨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이파리들 중에서 골라내려니 그놈이 그놈 같아 엉뚱하게 잔디를 들썩일 때도 있다. 갈고리처럼 생긴 호미를 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한 줌이나 수확하는 쾌거를 맛보았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되었고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이사 후 첫봄을 맞은 나는 초봄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자마자 미리부터 잔디밭을 돌며 풀싹을 뽑기 시작했다. 괭이밥풀, 누운주름잎, 벌씀바귀…. 모두들 ‘나 여기 있소’ 하며 얼굴을 내민다. 어느새 보랏빛 제비꽃도 군데군데 피어났다. 반가웠다. 제비꽃은 두고두고 보리라. 며칠 뒤 옆집에서 놀러 왔다가 제비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반찬은 셀프입니다/충청매일 2022.3.30 ‘반찬은 셀프입니다.’ 맛집에 들어선 우리는 메뉴판 아래 커다랗게 쓰인 문구를 발견했다. 자리를 잡자마자 자연스레 다시 일어나 반찬이 진열된 곳으로 갔다. 일행 중 누군가 귀엣말로 “좀 너무한 거 아냐? 기본 반찬도 안 주고 갖다 먹으라니.” 한다. 런던을 여행하던 중 카페에 들른 적이 있다. 커피를 마시고 나오면서 우리는 마신 컵을 도로 쟁반에 담아 갖다 주었다. 여종업원은 깜짝 놀라 연신 ‘미안하다, 감사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놀란 쪽은 오히려 내 쪽이다. 뭘 당연한 걸 가지고 호들갑인가 싶어 “왜 저러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본인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고객이 대신해주었으니 저리 고마워하는 것이란다. 자기네 말이면서 그들은 셀프도 모르는가 의아했다. 우리는 셀프라는..
우수와 경칩 사이/2022.3.2 ‘득- 득-' 아진 먼 새벽인데 옆집에서 눈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폭설이 내렸나 보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온통 눈 세상이다. 소리소문없이 몰래 내린 그야말로 도둑눈이다. 일기예보에도 눈 소식은 없었는데…. 곧바로 싸리비를 들고 나섰다. ‘쓱-쓱-’ 운동 삼아 눈을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와 얻은 즐거움 중 하나다. 습하지 않아 포슬포슬한 눈을 치우는 손맛이 그만이다. 일찍 나온 덕에 자동차 바퀴 자국이 남지 않아 다행이다. 이러한 즐거움이 얼마나 갈는지 장담할 순 없지만 아직은 눈을 쓰는 일이 싫지는 않다. 눈이 좋아 강원도로 이사 갔다가 시도 때도 없이 눈만 쓸다 지쳤다는 어느 부산 사람보다는 그래도 나은 것 같다. 눈을 쓰는 일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겨울 가뭄에도 불..
새는 한 나무에서 벗하지 않는다 엄동설한의 냉기가 뼛속을 파고든다. 유릿가루 같은 눈발이 어깨를 스치며 허공에서 흩날린다. 잔뜩 움츠리고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 찬바람을 몸에 잔뜩 묻히고 한 사내가 부동산사무실로 들어선다. 건장한 어깨가 축 처졌다. 피로에 지친 모습이다. 이사 날짜가 임박한 것으로 보아 이미 여러 부동산을 거쳐 온 듯하다. 월세는 시세보다 웃돈을 내도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가 딸린 세입자를 원하는 임대인은 아무도 없었다. 맥없이 돌아서는 젊은 가장의 뒷모습은 절망의 울타리였다. 아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을 젊은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을까. 곧이어 월세를 놓아달라는 중년의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당차 보였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는 구구절절 임대조건을 설명한다. 보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