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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칼럼-강현자의 잠시만요

우수와 경칩 사이/20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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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 먼 새벽인데 옆집에서 눈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폭설이 내렸나 보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온통 눈 세상이다. 소리소문없이 몰래 내린 그야말로 도둑눈이다. 일기예보에도 눈 소식은 없었는데. 곧바로 싸리비를 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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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삼아 눈을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와 얻은 즐거움 중 하나다. 습하지 않아 포슬포슬한 눈을 치우는 손맛이 그만이다. 일찍 나온 덕에 자동차 바퀴 자국이 남지 않아 다행이다. 이러한 즐거움이 얼마나 갈는지 장담할 순 없지만 아직은 눈을 쓰는 일이 싫지는 않다. 눈이 좋아 강원도로 이사 갔다가 시도 때도 없이 눈만 쓸다 지쳤다는 어느 부산 사람보다는 그래도 나은 것 같다.

 

눈을 쓰는 일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겨울 가뭄에도 불구하고 올겨울 내겐 눈이 잦게 느껴진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이미 지났는데 이렇게 많은 눈을 쏟아놓도록 봄은 어디서 늑장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나무마다 가지치기도 모두 해 놓았고 밭을 갈 준비도 해 두었다. 대지는 아직 요지부동인데 마음만 저만치 내달린다. 날씨에 유난히 민감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너풀댄다. 쉬이 물러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겨울과 쉬이 달려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봄 사이에서 내 마음은 또 얼마나 기대와 좌절을 반복해야 하는지. 해마다 이맘때면 나의 감성지수는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스리랑카에서 온 학생은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며 열광했고 눈 오는 날이면 슬리퍼만 신은 채로 눈밭을 쏘다녔다. 한국의 사계절을 신기해하는 모습에 오히려 그 학생이 나는 신기했다.

그렇구나, 일 년 내내 같은 계절이라면 변화에 대한 기대도 기다림도 없겠구나. 새해 첫날이나 팔월 한가위나 같은 날씨라면 어떤 느낌일까? 따뜻함과 포근함, 선선함과 시원함의 차이를 알까? 단풍잎의 샛노란 색과 뉘리끼리한 색, 노르스름한 색은 또 어떻게 표현할까? 추울 때라서 유독 생각나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봄이면 찾아오는 풋풋한 사랑에 대한 설렘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밋밋한 일 년 열두 달이 두 해가 되고 세 해가 되고. 일 년 내내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이 똑같다니 변화 없는 나날을 그냥그냥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해보니 나는 축복의 땅에 살고 있으면서 경칩도 오기 전에 유난히 투정을 부려왔다. 내 뜻대로 오지 않는 봄은 도도한가 싶다가도 슬그머니 다가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를 경탄케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불꽃이 터지듯 현란한 언어와 쏟아지는 감성. 그때마다 옷차림을 바꾸면서 기분전환도 한다. 사계절이 있어 우리는 풍부한 정서와 더불어 부지런함이 몸에 배었는지도 모른다. 지루한 장마와 한겨울의 긴 한파는 인내를 가르쳐주었다. 실망하고 좌절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으니 끈기를 배운다. 계절은 그렇게 불언지교(不言之敎)로 나를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