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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칼럼-강현자의 잠시만요

초대받지 않은 꽃/2022. 5.11.

강현자

 

초록이 눈에 어리어리하다. 지금도 여전히 난 녀석을 찾아 잔디밭을 헤맨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이파리들 중에서 골라내려니 그놈이 그놈 같아 엉뚱하게 잔디를 들썩일 때도 있다. 갈고리처럼 생긴 호미를 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한 줌이나 수확하는 쾌거를 맛보았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되었고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이사 후 첫봄을 맞은 나는 초봄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자마자 미리부터 잔디밭을 돌며 풀싹을 뽑기 시작했다. 괭이밥풀, 누운주름잎, 벌씀바귀. 모두들 나 여기 있소하며 얼굴을 내민다. 어느새 보랏빛 제비꽃도 군데군데 피어났다. 반가웠다. 제비꽃은 두고두고 보리라.

 

며칠 뒤 옆집에서 놀러 왔다가 제비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모두 뽑으라고 성화다. 제비꽃은 봄소식을 일찌감치 알려주기에 반갑고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예쁜 꽃을 왜 뽑아내야 하는지 반문을 하자 언니, 그거 나중에 씨 날리면 잔디를 다 덮을 거예요.” 하더니 이내 꽃반지를 만들어 손을 들어 보인다. “어때 예쁘죠? 그래도 이건 뿌리가 잘 뽑히지도 않아서 작년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우리 집까지 씨가 퍼지면 안 되는데?” 한다.

 

그렇구나. 나만이 아니라 이웃도 생각해야 하는 거였다. 그때부터 마당 한구석에만 제비꽃 군락을 남겨놓고 죄다 뽑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꽃이 다 져서 어느 것이 제비꽃잎이고 어느 것이 잔디인지 잘 표시가 나지 않는다. 뽑아내는 것마다 밑동에 동그란 열매를 달고 있다. 이 열매가 익어 터지면 내년에는 제비꽃 천지가 될 터였다.

 

작고 앙증맞은 제비꽃이 오랑캐가 되어 이곳저곳에 퍼지니 잡초 신세가 된 것뿐이다. 잡초가 약초 되고 약초가 잡초가 되었다. 그러게 왜 아무 곳에 싹을 틔워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신세가 되었을꼬?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제비꽃이 딱하다. 악마의 손을 거쳐야 하는 그것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사람도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아무 데서나 설쳐대다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지 않던가. 나설 때 안 나설 때를 가리지 않고 늘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혹시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서 있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을까. 나의 존재로 인해 불편했던 사람은 없었을까. 지금 나는 내 자리를 잘 알고 서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일이다.

 

가라, 가거라, 너의 자리에서 너희끼리 마음껏 자태를 뽐내보렴.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니 뭇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사진 속 모델이라도 되어 보렴. 꽃과 뿌리가 모두 약재로 쓰이고 화장품 재료로도 쓰인다니 인간에게 후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제 자리가 아닌 곳에서 쭈뼛쭈뼛 앉아 있지 말고 너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꽃을 피워라.

호미질하는 손이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