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수필

발걸음 에세이/한국수필11월호

염원을 담다

-통일대탑 보탑사 삼층 목탑-

 

목탑은 분명 꽃술이었다. 연곡리 보련산을 나지막이 둘러싼 산봉우리가 연꽃잎이라면 목탑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술임에 틀림없다.

연꽃 피는 계절에 보탑사에 갔다. 보련골 계곡을 따라 이미 여름이 짙어간다. 전에 있던 연꽃밭을 찾았으나 잡풀만 무성해 못내 아쉬웠다. 보탑사를 둘러싼 보련산 능선이 어우러져 연꽃 형상을 하고 있으니 나는 이미 연꽃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충북 진천군 연곡리 보련산 자락에 있는 보탑사는 한때 사진에 빠져있을 때 카메라를 둘러메고 철마다 찾던 사찰이다. 1996년에 창건하여 역사가 깊지는 않다. 고려시대 석탑 부재들을 모아 세운 삼층석탑으로 보아 이미 절터였음을 짐작케 한다. 다른 사찰처럼 고색창연한 모습은 아니지만 이른 봄부터 진사들은 물론 상춘객이 몰려든다. 비구니 스님들이 정성스레 가꾸어 놓은 야생화를 보러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 수령이 300년을 훌쩍 넘긴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서 한 부부가 정담을 나누고 있다. 지나온 세월만큼 구불구불 휘어진 가지 사이로 하늘을 뒤덮은 초록 잎새가 바람에 파르르 떤다. 그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자비를 그 부부에게 흩뿌리기라도 하는 듯하다.

 

 

 

 

 

 

 

 

 

 

일주문은 따로 없다. 커다란 귀에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이 호통을 치는 듯하여 내 안의 삿된 기운이 다 사위어버린다. 사천왕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바로 정면에 삼층 목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탑 아래 꽃밭에는 정성스레 가꾼 부처꽃, 털중나리, 백일홍. 친숙한 꽃들이 먼저 반긴다. 참나리는 무슨 염원을 담아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것일까. 꽃잎은 쪽진 머리처럼 뒤로 젖혀 동그랗게 말리고 꽃술은 기도하는 여인의 긴 속눈썹 같다. 스님의 염불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진다.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삼배를 올린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탑사는 3층 목탑으로 1층 큰 법당은 사면불전이다. 2층에는 법보전, 3층에는 미륵전이 함께 있어 더욱 장대하게 느껴진다. 목탑은 밖에서 보면 사각이지만 안에서는 원통처럼 하나로 통한다. 아파트 14층 정도의 높이에 쇠못을 전혀 박지 않고 목재를 끼워 맞춰 지었다는데 그 기술이 놀랍다. 게다가 안에서 3층까지 직접 올라가 볼 수도 있다.

1층은 부처님의 뜻이 사방으로 퍼지라는 뜻으로 사방불을 모셨다. 지금 스님이 앉아 계신 곳은 아미타여래가 중앙에 본존불로 모셔져 있고 협시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남북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비로자나불과 각각의 협시불을 양쪽에 모셨다. 부처님의 자비가 내게도 한 자락 닿기를 소망하며 탑돌이 하듯 손을 모으고 한 바퀴 돌았다. 약사우리광불 앞에서는 요즘 점점 나약해지는 체력이 나이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크게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소박한 마음을 전하고 나니 왠지 든든하다.

동서남북 사방불을 모셨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방으로 퍼져 그 자비와 은혜가 모두 하나로 모아지리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심주(心柱) 둘레에는 999개의 간절한 발원이 담긴 원탑이 모셔져 있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한쪽에 계단이 있어 올라가 보았다. 2층 법보전에는 윤장대 세 곳에 팔만대장경을 봉안했다고 한다. 원통형으로 된 윤장대는 경전을 넣은 책장이라고나 할까?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한다. 손으로 돌리면 돌아간다고 하는데 내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마 불심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다. ‘게으른 자여 성불을 원하는가라고 했던 어느 사찰에서의 표석 글귀가 나를 부끄럽게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래, 내가 뿌린 만큼 거두는 거지 더 바라면 욕심 아니겠는가.

2층과 3층 사이 암층에는 인도, 중국, 일본, 우리나라 목탑의 연원을 알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탑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보탑사 3층 목탑은 신라시대 황룡사 9층 목탑을 이어받았다 한다. 목탑은 석탑과 달리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팔상전도 목탑이지만 위층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보탑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목탑이다. 황룡사 목탑이 삼한일통을 염원하여 지었다면 보탑사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지은 통일대탑이란 말에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밖에서 보면 각 층마다 사방이 불전인 보탑이 안에서 하나로 통해 있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사방천지 울려 퍼져 한목소리로 통일을 염원하는 것이 아닐까.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통일이 어디 남북통일만 있겠는가. 초고속으로 발달하는 문명의 이기로 세대간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어른은 자칫하면 꼰대로 치부되기 쉬우니 옳은 말 하기도 조심스럽다. 이제 아이들은 어른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배운다. 노인이 소외되는 세상보다 어른, 아이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 아쉽다. 세대 간 갈등뿐 아니라 남녀 간 갈등도 심상치 않다. 언제부턴가 양성평등을 부르짖고 있지만, 겉으로는 나아지는 듯 보여도 속내까지 평등을 인정하기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평등의 잣대가 서로 통일되지 않은 바에야 양성평등도 공염불이 되지 않을는지. 게다가 지역간의 갈등, 좌파와 우파, 흙수저와 금수저. 우리가 하나로 뜻을 모아야 할 곳이 참 많기도 하다. 그야말로 국민대통합이 이루어지기를 부처님 앞에 발원해 본다.

3층으로 올랐다. 미륵전이다. 화려한 금동보개 아래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신도 셋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도 삼매 중이다. 무엇을 발원하는 것일까.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도 따라 미륵불의 용화세계를 감히 넘실거려보지만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567천만 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로 돌아온다는 부처님이다.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먼 미래지만 우리에게 미륵불은 그야말로 희망이라는 믿음을 준다. 땅은 유리와 같이 깨끗하고 평평하며 꽃과 향기로 뒤덮인 세계, 지혜와 위덕을 갖추고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 차 84천 살이 되도록 살 수 있다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미륵 세계에 도달할 때까지 티끌만치의 죄업도 모두 씻어내라고 그 긴 세월이 주어진 걸까? 용화세계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터,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수억 년 전부터 나의 존재가 이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인 존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영혼의 존재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는지도. 그렇다면 지금도 나는 용화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정숙한 미륵전을 내려오는데 계단 소리가 유난히 삐걱 소리를 낸다. 그동안 삿된 마음으로 살아왔음을 꾸짖는 소리 같다. 이제라도 죄악의 씨앗을 없애고 업장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여여하게 살 수 있기를. 내려오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목탑을 한 번 더 돌며 영산각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중생들을 만난다. 불유각(佛乳閣)에서 목을 축이고 지장각을 지나니 반가사유상이 보탑을 향해 앉아 은은하게 미소짓는다.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일까?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공덕과 수행을 쌓아 세상 모두가 하나 되어 극락을 향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것은 아닐지.

와불을 모신 적조전(寂照殿)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열반하시면서도 빙그레 법열을 보이사 부처님은 내게도 깨달음의 미소를 보내신다. 풍경소리가 은은하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범종각과 법고각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둥둥둥어디선가 하늘의 소리가 보련산에 닿은 듯하다. 눈을 감지 않는 나무 물고기는 어느 바다에서 이곳 보탑사까지 올라왔을까. 바다가 산이고 산이 바다라는 깨달음을 전하려는 것일까. 한갓 미물에 울고 웃고 너와 나를 경계 지으며 미세한 차이에도 핏대를 세웠다. 목어와 눈을 맞춘다. 복잡한 세상도 알고 보면 하나일 터인데

땅에 닿을락 말락 범종이 용두 아래 묵직하다, 하대 크기만큼 움푹 파인 홈에 시기와 질투, 욕심, 이념 대립. 중생의 번뇌를 모두 모아 맥놀이로 거듭나니 이는 땅의 소리다. 법고에서 울리는 하늘의 소리와 범종이 품은 땅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우주 만물이 결국 하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는가. 남북으로 갈린 이념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던 보탑사 창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며 천왕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