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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의 창작 수필

관계

관계

 

강현자

 

여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파란 공간에서 그녀의 빨간 입술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문밖에서 고양이가 들여다본다. 지금 숨을 죽이고 있다. 문우의 그림 전시회에서 유독 나의 눈길을 끈 작품이다. 사색에 잠긴 그림 속 여인은 그분 자신을 그린 것은 아닐까. 수필공부만 하는 문우인 줄 알았는데 그림까지 수준급이다. 팸플릿을 받아들자마자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자주 얘기를 나눠보지 못해서 마음이라도 표하고 싶었다. 그림 속 여인에게 마음을 전하듯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전시회를 자주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일찍부터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전시회에 갈 때마다 주눅이 든다. 그림을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란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도 백지로 제출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두 시간 내내 짝꿍이 그리는 것만 신기한 듯 바라보다 수업이 끝나 버리곤 했다. 전시된 미술작품을 볼 때에도 그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눈에 익었던 풍경이 나오면 그나마 반가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내가 사진 찍을 때의 마음처럼 그림을 그린 작가도 같은 마음으로 작업했으리라 짐작하며 전시회를 찾는다.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작품을 그렸을까 가늠해보지만 도무지 알 수 없다. 제목도 없다. 제목이 없는 작품에서 주제나 의미를 찾는 것은 감상하는 이의 몫이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 만들어진 사색의 공간이다. 망망한 밤바다를 그린 것 같은데 그곳에 왜 나비 한 마리가 있을까?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예술이란 생각이 든다. 고개만 갸우뚱거리다 바로 옆에 있는 그림에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무심한 듯 평화로운 파란 공간에서 여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지그시 눈을 감은 그녀는 지난했던 날들의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낸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는 신비스런 모습이다. 번뇌의 늪에서 헤어나려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걸까. 아니 슬픔을 거부하며 새로운 꿈을 마시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개를 약간 돌린 여인의 뒷모습에서 잠시 나를 본다. 생각은 끊임없이 머리와 가슴 속을 헤매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이다. 미움과 연민, 갈등과 용서, 절망과 후회 이 모든 것을 털어내려 눈을 감는다. 폭풍이 지난 후의 평화를 내 안에 불러온다. 자드락비가 퍼붓고 난 뒤에 비치는 햇살이 그리운 파란 공간이다.

 

빨간 입술의 여인을 문밖에서 안타깝게 들여다보며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타인이다. 무관심의 관심이다. 직접 다가오진 않아도 여인을 지켜보는 눈빛이 애틋하다. 자신도 모르게 멀리서 마음으로 지켜주고 기다려주는 고마운 타인이다.

나에게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있을까? 어디엔가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내 앞에 보이진 않아도 나의 운명을 바라보고 주재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절대자가 아니라도 혹 날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아주 가까이서 나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길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한낱 착각이라 해도 믿고 싶다. 그래야 외롭지 않을 테니까.

 

여인과 고양이의 거리가 먼 듯하면서도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저 문밖의 고양이처럼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그런 관망이라야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모른 척하고 적당히 무관심한 척 눈감아 주는 것이 때로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내가 네가 될 수도 네가 내가 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관심 속에 살아간다. 사랑도 미움도 관심에서 싹이 튼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누구나 우울감에 빠지고 만다. 그것이 비록 증오로 가는 부정적 관심이라 하더라도 그건 분명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다.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외롭다고만 할 수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분란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알고 보면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을 넘어 집착을 했거나 간섭의 결과이다. 사랑이라는 비단주머니에 대못을 넣고 있는 격이다.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티케가 함께 저술한 심리학 저서인 ≪미움받을 용기≫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대인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관계의 유연한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 공간에 수용과 이해, 그리움과 배려가 존재하기에 멀리서 보아야 더 아름답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애집하기보다 여유 있는 공간 하나 쯤 두어야겠다.

 

그림 속 여인은 무한히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고양이의 말없는 관심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여운을 안은 채 발걸음을 옮기니 아까부터 궁금하던 나비가 망망한 밤바다를 벗어나 봄을 날고 있다. 노오란 유채와 파릇한 잔디 위를, 그리고 벚꽃 흐드러진 화사한 세상을 맘껏 날고 있다. 아마 그림을 그린 작가의 마음이 그러하리라. 작품을 관람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알아내려 수수께끼 풀 듯 감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나대로 해석하며 나만의 상상 속으로 빠지면 그만이다. 작가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열린 공간을 마음껏 노닐다 전시장을 나왔다. 비거스렁이에 나들이 하듯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하다.

 

- 2019 한국수필 등단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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