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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의 창작 수필

바위틈에 피는 꽃

바위틈에 피는 꽃

 

강현자

 

  어디서 날아들었을까. 윤기 마른 화초 가운데 유독 맑은 연둣빛 작은 풀싹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 채 가기 전 옅은 햇살이 창가를 서성일 때쯤이었다. 겨우 잎 모양을 갖춘 것이 이제 막 앞니가 나오는 아기처럼 앙증맞았다. 불청객치고는 귀엽고 여릿해 차마 뽑아낼 잡초감도 못 되었다. 키가 훤칠한 워킹아이리스 화분 그늘 안에서 언제까지 자랄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뽑혀나갈 때 뽑히더라도 들판에서 버젓이 햇볕이나 달게 받고 튼실하게 행세할 일이지 어쩌자고 이곳까지 와 자리를 잡았을까. 가녀린 줄기에 맺힌 억척스런 생명력이 안쓰럽더니 어느새 뾰족한 꽃봉오리를 맺었다. 화분에 곁자리를 얻었으니 남의 집에 얹혀사는 기죽은 아이처럼 들판 제집에서만큼 튼실하진 못하다.

 

  ‘바위틈에 피는 꽃

  가끔 어머니는 바위틈에 피는 꽃이라며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곤 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힘에 겨워도 끝내는 꽃을 피우고 말 것이라고 이미 내가 대견한 듯 등을 토닥이셨다. 바위틈의 환유적 의미를 몰랐던 나는 꽃에다 방점을 찍었다. 심산유곡에서 고고하게 핀 꽃이라니 상상만 해도 귀하고 예쁘지 아니한가. 그리고는 잊고 지냈다.

어릴 적 문학소녀 아닌 사람 없듯이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장을 보신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글짓기반으로 보내신 후로 글짓기는 나의 생활이 되었다. 원고지에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는 바로 친구가 되었다. 어른들의 칭찬을 들으며 일찍 꿈을 갖게 된 나는 무지개를 올라타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진로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한 번 내보기나 하자고 쓴 여분의 입학원서가 좋은 조건으로 합격이 되면서 나는 졸지에 효녀가 되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The Road not Taken’이 바로 내 이야기가 될 줄 열아홉 어린 나이에 짐작이나 했을까. 그길로 서울 객지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길이 내겐 아무도 밟지 않은 낯선 길이었고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세상에 꽃길만 걷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직 이른 나이에 가풀막을 오르기가 힘에 부쳤다. 쪽다리를 건너며 꿈은 점점 흐릿해졌다. 내 앞엔 돌너덜길만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문학소녀의 초롱한 눈빛 대신 하루하루 주어진 삶의 현장으로 눈에 불을 켜고 뛰어다녀야 했다. 어떻게든 졸업이나 무사히 하자는 것이 지상 최대 목표였다. 시난고난한 세월 속에서 내게 꿈이란 건 아예 없었던 듯 결혼 후에도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성실하게 살아낸다는 것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내 생의 한가운데에 나는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개구리를 찬물에 넣고 열을 가하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지 못하듯 나 역시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적응을 잘도 하면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찾아야 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진짜 모습이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 나의 페르소나를 벗겨내야 한다. 진정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은 그대로 내 아이들과 남편에게 고스란히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엄청난 용기와 희생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나는 홀로 섰다.

  정말로 내가 바위틈에서 살고 있었을까. 너울이 잦아들자 잃어버린 내 자리가 설핏하게 보이는 듯했다. 겨우 다시 문학책을 손에 들었을 때 잊었던 나의 꿈이 기억 저편에서 다가왔다. 빙빙 돌아온 머나먼 여정이었다. 제자리로 돌아와 나를 찾는 일에 몰두하니 억눌렸던 열정이 스멀스멀 깊은 곳에서 끓고 있었다. 그 원동력은 바위틈에서 얻어낸 끈질긴 생명력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좋은 기회가 있어 수필 마당을 기웃거리다 글 세상에 어둑해진 나를 절감했다. 너무 늦게 돌아온 건 아닐까. 저만치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을 부러워하며 잃어버린 나의 시간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봇물 터지듯이 솟아나는 열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때마침 만난 수필교실 선생님과 문우들이 있어 내게 물을 흠뻑 적셔 주기도 한다. 내겐 축복이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뿌리를 내린 괭이밥풀처럼, 40년을 부유하다 이제 막 씨를 내린 것이다. 연하디연한 나의 이파리는 아직 모양새도 갖추지 못했다. 그래도 저만치 돌아온 세월만큼 많은 자양분을 얻지 않았을까. 언감생심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 한다.

  아마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원래의 길을 처음부터 걸었다 해도 나름대로 썩은 낙엽과 자갈은 있었겠지만, 화분에 핀 괭이밥풀처럼 연약한 연둣빛보다는 야생의 클로버처럼 진하고 강한 초록을 띠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괭이밥풀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통통하다. 몇 날 며칠을 화분에 눈길 한번 주지 못한 적도 많았다.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와 여린 잎이 삐들삐들 마르다가도 어쩌다 한 번 주는 물세례가 축복인 양 이내 생기를 찾더니 그 모습이 대견하다. 그래 맞다. 내게도 바위틈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있었을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바위 덕에 더 큰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괭이밥풀꽃이 씨오쟁이를 터뜨리듯이 바위틈에 나도 꽃을 피워보리라. 어릴 적 어머니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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