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연의 창작 수필

 

강현자

 

  마스크를 벗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비틀어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3월 하늘이 깊다. 굽은 도로를 막 돌아서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나무가 휙 하고 지나간다. 백 미터쯤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 휴대폰에 담았다. 이제 막 물오르기 시작한 오래된 버드나무였다. 매운바람이 쉼 없이 달려와 따스한 봄볕을 쬐는 버드나무 가지를 후려치고 있었다. 여린 연둣빛 가지가 사선을 그어댄다. 파란 도화지에 얼레빗처럼 그려낸 가지런한 무늬가 꽃샘바람에 몸살을 앓는다. 봄이 그리 쉽게 오지 않듯 그도 쉬이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는 놀람과 호기심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웬 호들갑이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금세 곁으로 바싹 다가온 그는 우리를 당황케 했고 지금은 우리 모두의 정신세계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공포다. 사래가 들어도 드러내놓고 기침할 수가 없고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눈치를 보게 된다. 세상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걷잡을 수 없는 그의 확산은 젖은 왕겨가 타들어 가듯 진한 연기를 내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녔다. 인류의 재앙이고 신이 내린 경고다. SNS에서는 무책임한 유언비어가 춤을 춘다. 국민은 정치를 못 믿고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인은 책임 돌리느라 급급하다. 종교의 이념이 사라지고 사회 윤리의 질서도 추락했다. 기원전에는 바벨탑이 무너졌지만 21세기 지금은 지구촌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인간의 오만을 응징하려는 것인가.

  모두가 마스크를 두르기 시작했다.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인파가 줄을 잇건만 빈 걸음을 돌리기 일쑤다. 이제 마스크도 일상이 되어 늘 입는 옷처럼 패션 시대가 오지 않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께 다녀온 지가 언제인지……. 모든 학교는 개학을 미루고 우리 공부방도 문을 닫은 지 보름이 지났다. 모든 일상이 멈춰버렸다. 안으로 꽁꽁 문을 닫고 집 밖을 나서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 서로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남은 나의 경계 대상이고 나도 남의 경계 대상이다. 지나는 옆 사람도 슬금슬금 피해 떨어져서 걸어야 하고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눈총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마스크를 처음 썼을 때는 챙모자를 눌러쓴 범죄자를 연상하곤 했다. 누구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동그랗게 눈알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상대는 얼굴만 가린 게 아니라 본인의 정체성까지도 감췄을 것 같기 때문이다. 몇 밀리미터도 되지 않는 얇은 막으로 천 길 거리감이 느껴진다. 자신을 위한다거나 남을 배려하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기분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어색하게 보일 정도다.

마스크는 막()이다. 막의 바깥은 부정(不正)이며 부인(否認)이고 안으로는 긍정(肯定)이며 인정(認定)이다. 이렇게 잠재된 극단적 사고가 인간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밖에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고자 막을 두른다면 과연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기운은 늘 온전한 것일까. 밖에서 보면 밖이 안이 되고 안이 밖이 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을 구분 지어서 서로 배척하려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막이다.

  막은 단절이다. 결국, 나도 얼굴에 막을 치고 말았다. 감염자, 양성, 확진자, 격리……. 이제는 익숙해진 단어들과 연일 올라가는 수치에 사람들의 가슴은 무너지고 그럴수록 마음의 빗장을 더욱 굳게 걸었다. 아버지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가족의 단절, 친구 결혼식에도 갈 수 없는 사회적 단절, 출입국을 통제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단절. 자영업자들은 손을 놓았고 주가는 곤두박질했다. 그 누구도 작금의 바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료진들의 투혼과 봉사자들의 따뜻한 소식만이 우리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해준다. 가슴 뛰는 희망의 불씨다.

  막은 새로운 시작의 알림이다. 1막의 뒤에서 2막을 준비하기 마련이다. 공부방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서 훈풍이 배어 나온다. 막을 두른 채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학부모도 아이들도 그리고 나도 같은 마음으로 서로 응원하고 있었다. 만나지 못하는 사이 서로가 정으로 마음을 적시고 싶어 했다. 평범하기만 하던 지난 일상의 소중함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마스크가 보여준 경계와 불신은 나만 살아남겠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배려였다. 막의 이쪽과 저쪽은 경계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정을 우리는 마스크 안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얼굴에 막을 두르고 있지만, 서로를 격려하는 가슴 따뜻한 마음에서 환한 희망이 보였다. 그것은 위안이고 변화의 출발점이다.

  누구나 갑작스런 위기에 맞닥뜨리면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 한다.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당황하고 멘탈 붕괴 상태에 빠지다가 결국은 수용하게 된다. 거북하기만 하던 마스크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눈에 익으니 이젠 자연스럽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폭풍이 지나고 나면 고요가 찾아오듯이 이처럼 위기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비로소 생채기에 새살이 돋는다.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머지않아 불신의 검은 막을 거두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막이 오를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러한 나의 생각도 불과 몇 달, 아니 며칠 후면 진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홀로 선 버드나무를 남겨두고 차에 올랐다. 따뜻하다. 봄볕에 눈을 뜨자마자 거센 바람에 시달리는 버드나무가 꼭 지금 우리를 닮았다. 멎지 않는 바람이 어디 있을까. 코로나19의 재앙 또한 지나갈 것이다. 바람이 잦아들면 버드나무가 더 푸르러지듯이 우리에게도 막을 거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주연의 창작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괜찮아  (0) 2020.12.19
바위틈에 피는 꽃  (0) 2020.12.16
충청도 사투리 수필  (0) 2020.12.14
불편한 동거  (0) 2020.12.11
함박꽃  (0) 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