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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43. 32사단 공병대대장으로 발령

32사단 공병대대장으로 발령

 

지긋지긋한 사령부 근무를 마치고 또다시 조치원에 있는 32 예비사단으로 전속명을 받았다. 이제야 다시 대대 근무를 하게 되었고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했으나 막상 대대장 생활을 해보니 기대와는 딴판으로 부하도 없이 기간 요원만 몇십 명뿐이었다. 당시 예비사단의 초창기였기 때문에 예비병 교육과 편성 작업도 되지 않아 순전히 기간 요원만으로 사단 운영을 해왔다.

 

그래도 비교적 시간이 많아 사단 전반의 공병 기능만 유지한다면 그리 힘든 생활은 아니었으나 나의 일련의 과거 군대 생활에 비하면 완전히 뒤로 밀린 처지에 틀림없었다. 그러니 마지못해 근무하는 연약한 입장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58년 여름에 나의 건강을 생각할 때 이제부터 몸에 관심을 두게 되어 청주에 있던 23 육군 병원에 사단장의 허가 없이 입원하고 말았다.

 

병은 폐결핵이었기에 다시 진단을 받아보니 증상은 경도를 넘어 중등도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역시 이 병은 본격적인 안정과 약물치료밖에 없는 것을 미련 때문에 오늘까지 미루어 왔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나 하고 후회했으나 도리 없었다. 그래도 군 복무를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폐인이 되거나 그 어느 날 죽음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이제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오로지 몸 회복에 열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몇 번이나 생각한 결과였다.

 

때마침 나는 중령으로 진급되어 다른 부대로 약속된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포기하게 되니 나의 인생의 큰 전환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참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고 나의 건강을 원망도 했다. 언제 이런 몹쓸 병이 생겼단 말인가! 6.25의 참전 기간(3) 동안 오로지 전투밖에 모르는 부대 근무만 했으니 과로에 과로가 겹쳐 이 모양이 됐으나 누구를 원망하리. 나의 부주의를 탓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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