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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수필

비광/한국수필 1월호/한국수필 2021 다시보기 12선

비광

 

강현자

 

복이라곤 어디에도 붙어있을 것 같지 않다. 벚꽃 같은 화사함도 없다. 그렇다고 보름달만큼 풍성함이 있는 것도 아니요, 를 꿈꿀 처지도 아니다. 이건만 빛이 없다.

 

오노도후라는 일본 서예가가 있었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비관하여 낙향하던 길에 비를 만난다. 버드나무 아래서 비를 긋던 중 빗물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개구리를 발견한다. 오노도후는 되지도 않을 일에 힘을 쏟는 개구리가 자신과 처지가 같다며 불쌍히 여긴다. 순간 불어온 강풍에 나무가 휘청거리자 개구리는 가까스로 가지를 붙잡고 탈출한다. 이를 본 오노도후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비광에 그려진 그림 이야기다.

오노도후의 긴 도포자락은 어렴풋이 새색시의 우울한 한복으로 환유되곤 했다. 광인가 비()광인가. 나는 비광의 음산한 기운을 아련한 기억 어디쯤에 묻어두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고갯마루로 몰려갔다. 신부가 곧 당도한다는 소식에 나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따라나섰다. 웅성거리는 어른들 바짓가랑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새색시의 행장은 저 멀리 까마득했다. 먹구름은 눈썹까지 내려앉고 음습한 바람이 고개를 타고넘었다.

 

그날로 할머니는 그 새색시를 작은엄마라고 부르라 내게 이르셨다. 할머니의 반복되는 옛날이야기는 점점 시들해지고 대신에 재미있는 볼거리가 늘어났다. 안 그래도 짓궂던 삼촌은 부엌이건 어디건 새색시만 졸졸 따라다녔다. 두 분이 꽁냥꽁냥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네 살배기 꼬마는 자연스레 할머니 손보다 작은엄마의 예쁜 미소가 좋았다. 할머니 품을 밀치고 늘 작은엄마 언저리에서 무슨 얘기든 쫑알거리며 따라다녔다. 신바람 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부턴가 작은엄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그 방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나는 또다시 작대기를 벗 삼아 마당가를 맴도는 시무룩한 날들을 보내야 했다. 우연히 열린 방문 사이로 아기를 안고 있는 작은엄마가 보였다. 내가 아닌 아기를 들여다보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멀찌감치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작은엄마는 계면쩍은 얼굴로 얼른 나를 품어주셨다. 내게 보란 듯이 공연히 아기에게 혼을 내는가 하면 먹을 것이 있으면 나를 먼저 찾으셨다. 똥꼬에서 지렁이가 나왔다고 소스라쳤을 때도, 마을 앞 샘에 퐁당 빠졌을 때도, 불장난을 하다가 집 뒤 밤나무 묘목을 홀랑 태웠을 때도 작은엄마는 늘 내게 수호천사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나는 청주 집으로 왔고 그 후 몇 년이 지나 작은집도 도시로 이사를 나왔다. 청주로 천안으로 시장통에서 리어카를 끌며 온갖 행상을 다 했지만 살림은 늘 녹록지 않았다. 작은엄마의 볼멘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한숨과 한탄으로 세월을 엮어가셨다. 사촌들이 다 클 때까지 작은엄마의 허리는 펴질 줄 몰랐다. 평생 행운의 여신은 단 한 번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당신 말씀마따나 어쩌면 지지리 복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세상을 탓하거나 낙심하지는 않으셨다.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살아내시는 데는 이골이 나신 것 같았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궁핍한 살림은 지혜로 메우시며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세태를 거스르거나 분노할 법도 하건만 항상 낮은 자세로 받아들이는 당신 곁엔 늘 성경책이 들려있었다. 찌든 삶에도 옳은 길밖에 모르시는 당신의 품을 언제라도 내게 내어주셨다. 부모에게서 받는 사랑을 당연히 여기듯 나 역시 작은엄마의 사랑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다. 아니, 그냥 잊고 지냈다.

 

얼마 전 작은아버지를 뵈러 병원에 함께 가던 길이었다. 만나자마자 작은엄마는 난감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신다. 나를 위해 일부러 봉지에 꼭꼭 싸서 냉장고에 넣어둔 요구르트를 깜빡 잊으셨단다. 그게 뭐 대수냐며 내가 응수하자

아녀, 네가 배 곯으믄 안 되능 겨.”

순간 나는 네 살, 작은엄마는 새댁이 되었다. 눈이 마주쳤다. 깊은 두 눈에 엄마만이 내어줄 수 있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작은엄마는 진짜 천사야. 어떻게 시집오자마자 시댁 조카를 맡아 키울 수가 있었어? 부담스럽고 싫었을 텐데.”

천사는 무슨? 아유~ 시집을 와 보니께 쬐끄만 꼬맹이가 꼬물꼬물 노는데 바라만 봐도 좋았구먼. 내가 오히려 너한테 고마웠지.”

그런데 이상해. 나는 비광을 보면 왜 작은엄마 시집오던 날이 생각나지?”

아이구, 말도 마라. 시집오던 그 날 택시를 타고 오는데 도중에 택시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 먼 길을 걸어서 왔잖어. 하늘은 시커머니 날은 또 왜 그렇게 스산하던지. 좌우지간 그때부터 이미 꼬인 인생이었어.”

 

여느 때처럼 하신 푸념은 달관이었다. 자신을 타박하며 타박타박 걸어오신 당신의 생을 늘 그렇게 으로 받아넘기셨다. 사람살이라는 것이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것이던가. 모진 삶을 주어진 대로 순응하면서도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작은엄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카를 무한 사랑으로 품어주신 또 하나의 내 어머니이시다.

 

비를 긋던 오노도후는 개구리에게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음산하던 고개를 넘어 시집온 작은엄마는 그렇게 인생 고개를 넘는 동안 스스로 개구리가 되어 飛光이 되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