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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수필

덧니

덧니

 

강현자

 

사진 속 낯선 여자가 박장대소한다. 거울 속에서 본 번듯한 그동안의 모습은 착각이었던가. 옆모습 사진이라 앞으로 돌출된 앞니는 더욱 튀어나와 보였다. 흡사 마귀할멈이 웃는 모습이다. 믿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나라니. 볼수록 민망하여 얼른 감추고 싶은데 사람들은 재미있다며 깔깔댄다. 배꼽 빠지게 웃던 그 날이 생각나서 웃는 것일 테지만 앞을 향해 치켜 오른 앞니 때문에 나의 콤플렉스를 들킨 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일곱 살 때였다. 고대하던 아들이 태어난 후라서 모두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려 있었다. 언제부턴가 앞니가 흔들리면서 혀끝으로 앞니를 쭈욱 미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모습을 우연히 보신 아버지께서는 딸에 대한 무관심을 들킨 듯 어쩔 줄 몰라 하시며 실을 문고리에 묶으셨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는 습관적으로 앞니를 혀로 밀었다. 그러자 툭 하고 젖니가 빠져버렸다. 그 자리에는 이미 새 이가 반쯤 올라와 있었다.

 

덧니는 나의 대명사였다. 어릴 적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첫마디가 뻐드렁니구나?”였다. 그러면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이를 드러내놓고 맘껏 웃을 수 없었다. 삐죽 나온 앞니를 눌러주면 조금이라도 들어갈까 싶어 아무리 손가락으로 있는 힘껏 꾹꾹 눌러대도 오히려 손끝에 대고 몽니만 부릴 뿐이다. 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비죽이 나온 덧니는 당당하지 못했다. 견고한 성벽을 밀치고 올라오는 고충이 오죽했으랴.

B의 눈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서운함과 서러움에 가슴이 복받치는지 잠시 말을 멈춘다.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봇물이 터질 것 같더니 용케 다시 말을 잇는다.

 

학창 시절 그녀는 미용사의 가위질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단다. 손가락 사이에 머리칼을 가지런히 잡고 얄상한 은빛 가위로 착착착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마치 교향악단의 멋들어진 연주처럼 들렸단다.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요리조리 머리 모양을 잡아가는 미용사의 눈빛은 곧바로 그녀의 선망이 되었다. 다니던 대학 등록금으로 부모 몰래 미용 학원에 등록했다. 가족들 모르게 미용실에 나가 실습 겸 보조로 잔일을 도와주는 시다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직 고객의 머리를 만질 만큼의 깜냥은 되지 못해 바닥을 쓸거나 손님의 아기를 돌봐주는 일이 고작이었다. 가슴속에 무지개가 걸렸으니 그런 일도 즐거웠다. 잘린 머리카락이 바닥에 쌓여가는 만큼 그녀는 꿈도 그렇게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B의 배움에는 막힘이 없었다. 이런 사실이 어머니의 귀에 닿기 전까지는.

 

무엇 하나 아쉬운 것 없고 남부러운 것이 없던 어머니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노릇이었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엉뚱한 길을 걸었으니 졸지에 돌연변이가 된 그녀는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 남편을 만나 미국에 가서 사는 여동생이 그나마 어머니의 자존심을 일으켜주었고 동생은 언제나 어머니에게 위안이자 자랑이었다. 그럴수록 맏이인 그녀는 위축되었고 그런 동생이 밉기까지 했다. 이제라도 다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라는 권유와 회유와 강요를 받았지만 그녀는 미용사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그녀에게 가족은 무너뜨릴 수 없는 굳건한 성벽이었다.

 

그녀는 한발도 물러설 수 없었다. 가족들로부터 멀어져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점점 빠져들었다.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억눌림을 참아가며 가족들의 외면이 깊을수록 그녀는 더욱 노력했다. 아니 더 열심히 즐겼다. 철벽만큼 견고한 어머니의 외면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더욱 이를 악물었다.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렸다. 누가 뭐라든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해냈다.

 

고객들에게 인정을 받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내로라할 정도로 그 방면에서는 스타가 되었다. 그녀의 명성이 자연스레 알려지자 아버지의 마음도 차츰 누그러지고 다른 친척들도 응원을 보내왔지만 어머니와의 녹슨 고리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가족에게 외면당한 그녀의 행복은 비죽이 올라온 덧니처럼 버젓할 수가 없었다. 큰딸로서 어머니의 병수발을 들며 사사로운 일을 해결하느라 종종거려도 공치사는 늘 어쩌다 찾아주는 동생 몫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늘 뒷전일 수밖에 없는 그녀는 어엿하지 못한 덧니였다.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나 기준은 그녀가 과감히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일반적인 관념으로 암암리에 정해진 직업의 차별, 개성을 무시한 불문율과 같은 잣대로 재단된 그녀의 청춘. 그래서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없었던 시절을 용케도 잘 이겨냈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했으니 능력을 인정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비록 덧니로 세상을 살아왔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어머니의 응원을 받으며 좋아하는 일을 했더라면 평생 가슴에 누름돌을 안고 살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당당하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기댈 수 없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아니었을까. 비록 큰딸을 향해 가시를 돋우었지만 험한 세상에서 꿋꿋하게 살라고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깊은 속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B의 눈가에 회한의 이슬 대신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덧니로 살면서도 가족들의 눈높이를 뛰어넘은 그녀의 삶에 응원을 보낸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미움받이로만 여겼던 덧니를 꾹 눌러본다. 평생을 함께하며 한 번도 이쁨받지 못해도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덧니가 오늘따라 대견하다.

 

(2021 좋은수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