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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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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학생활 나는 나고야시에서 사춘기를 맞이한 것 같다. 그동안 동생 희창이가 태어나고 나와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내가 중학교에 갈 무렵 소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성격이 남과의 대화나 만남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바탕은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누적된 자존심의 손상 등으로 인하여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심성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왔다. 그러나 희창이는 건강하고 남과의 교제를 좋아하고 친구도 꽤 많은 것 같았다. 사춘기가 되면서 차츰 영화관 출입도 많아졌다. 공부가 끝나면 같은 조선 사람 친구와 몰래 오락 장소인 영화관 출입을 하곤 했다. 물론 용감하게도 담을 넘거나 땅을 파거나 화장실 물받이를 타고 한 프로를 되풀이해서 보고 또 보고 밤이 어두워서야 집으로 오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면 나는..
4. 오오스기소학교(大杉小學校)에서 오오스기소학교로 전학 와서의 생활은 그럭저럭 6학년 졸업때까지 계속되었다. 담임은 하세가와(長谷川) 선생이었는데 일본군 해군 출신으로 대단한 긍지를 가진 자로 밤낮 일러전쟁 때의 도고 원수의 승리를 자랑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학예회 때는 이 승리를 소재로 한 내용뿐이어서 속으로는 지루하고 기분 나빴으나 이미 그즈음에는 일본인 행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본화가 되고 있었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짓밟힌 나라의 백성은 개인의 역량에 상관없이 승자 나라에서는 무시의 대상이 되고 만다. 조선인에게는 조선인의 교육이 별도로 있었으나 특히 풍습과 관용은 그들 눈에는 야만인처럼 보였다. 우리의 습관이나 생활양식은 후진국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나는 학교생활에 많은 고민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
3. 나고야에서 그 후의 생활은 결국 식구들이 모두 나고야로 이사하게 되었다. 풍교와 나고야는 그렇게 멀지 않은 역시 애지현愛知懸 내였다. 나는 모 소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전에 있던 학교와 달라 친구도 없고 더구나 조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나는 그 무렵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공부도 별 의욕을 갖지 못하는 소년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셨던 것 같고 아버지는 그때 사고로 눈에 의안을 끼고 손은 불편 없을 정도로 나았으나 새로운 객지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할 수 없이 살 뿐이었다. 아버지의 성격은 원래 활달한 편이었다. 재담을 잘하며 한문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친구들이 모여 토론을 하거나 무슨 경삿집 같은 곳에서 한시로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니 같은 친구 사이에서 평이 좋아 항상 모든..
2. 소학교(小學校)에 입학 나도 만 여덟 살에 그곳 풍교시의 마츠바소학교(松葉小學校)에 입학했다. 난 원래 공부보다 체육을 좋아했다. 몸도 건강하고 무슨 운동이든 그 또래에서는 나를 따를 자가 없었다. 달리기는 이미 육 학년 급에 속하여 하급생으로는 드물게 현내(縣內) 체육대회에 선발되어 여러 번 출전하기도 했다. 우리 동포인 조선인 친구도 꽤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절친한 유부영 씨도 있었다. 오로지 지금까지 생존하여 친숙하게 지내는 단 한 사람의 친구다. 유부영은 고향이 신탄진으로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이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정도 위인데 비위가 좋고 재담을 잘하여 비 오는 날이면 자진해 나서서 이야기를 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 우리 집은 물론 셋집이었을 것이다. 한 집에 신탄진 노산에 사는 유ㅇㅇ와 또 한 가족이 있었으나 ..
1. 일본으로 나는 1926년 음력 3월 1일생으로 범띠이다.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 학암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대청댐으로 수몰되고 말았다. 그곳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후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서너 살 때 그곳을 나와 지금의 남이면 문동리에서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다. 어머니는 성주 배씨로 친정이 낭성면 추정이며 딸 셋만 있는 중 장녀로 1903년생이다. 아버지는 젊은 그 시절에 드물게도 문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한일합방 된 일제하에서 성장했다. 일제하의 생활에서도 아버지는 꽤 야심이 있어 급기야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할아버지는 학암에, 어머니와 나는 문동에 두고 자리를 잡으면 연락한다고 떠났다. 할아버지의 부양은 큰아버지가 맡으신 것 같다. 어머니는 혼자 나를 키우면서 그야말로 초근목피의 생..
서문 한 가정의 장남이자 가장이었던 한 남자가 남긴 인생 이야기, 자서전을 정리하려 한다. 한 개인이 살아 온 인생 이야기지만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맞먹는다고 했던가. 이 자서전에는 일본 속의 조선과 대한민국, 한국 전쟁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에서 자라 일본 군대를 제대하고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성장기 침략국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서글픔, 찌들한 가난을 면하기 위해 하사관에 입대하여 공병대 장교로서 제대를 할 때까지 전쟁 중에 그가 치렀던 생생한 이야기는 단지 한 사람만의 역경은 아니다. 공포와 긴장 그리고 목숨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후의 안도감. 그는그 안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단지 전쟁 중에 얻은 훈장과 국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