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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수필

냄새와 향기

냄새와 향기

강현자

 

이제 철이 좀 드나 보군. 전원생활이라고 만만한 것은 아니지.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환경인데도 제법 적응을 잘하는 것 같더라고. 근데 그건 정말 아니었어. 어떻게 음식물 쓰레기를 줄창 내다 버릴 수가 있냐고. 들판 어디쯤 인적이 드문 곳에 버리면 자연히 썩어서 거름이 될 거라고? 천만의 말씀. 퇴비가 되기 전에 고라니와 들고양이, 들쥐들이 먹이를 찾아 늘 그곳을 뒤지지. 그러니 이웃 텃밭을 빠대고 다니며 망가뜨리니 그 음식물 찌거기가 들판의 무법자들을 불러들인 꼴이었어. 이제라도 한곳에 모아 잡초와 부엽토를 섞어 발효액을 넣고 퇴비를 만들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야. 덕분에 나도 마음껏 숨을 크게 쉬며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어.

그런데 어제 보니까 삶은 완두콩 껍질을 수북하게 퇴비함에 넣더라. 그 많은 완두콩을 삶아서 혼자 다 먹었다는 이야긴데 좀 너무 한 것 아니야? 이제 와 고백하는데 지난 3월 네가 완두콩을 심고 돌아섰을 때 나와 친구들이 궁금해서 가보았지. 사실 그 콩이 얼마나 우리를 유혹했는지 아니? 네가 우리 몫까지 세 알씩 심는 바람에 우리도 살짝 맛을 보긴 했지만 말이야. 날것만 먹는 우리는 잘 모르지만, 완두를 금방 따서 껍질째 찜기에 넣고 쪄서 먹으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여간 아니라면서?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던데. 아무리 콩을 좋아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 많은 콩을 삶아서 한 번에 다 먹을 수가 있어? 오늘 혹시 변기를 확인해 보았니? 배설물이 온통 연두색이었을 것 같아.

앵두는 또 왜 그리 좋아하는지. 그 앵두, 우리가 벌써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가끔 간식으로 아껴먹긴 했지만 너는 숫제 빨간 앵두를 한 대접 따와서는 입에다 한 주먹씩 욱여넣고 먹더라. 어려서부터 풋과일이든 무엇이든 과일이면 다 좋아하긴 했지만 앉은 자리에서 그 많은 앵두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지. 아마 내일은 빨간 똥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거참 희한하네. 하기야 희한한 것이 어디 사람뿐이겠어? 위로 먹고 아래로 싸는 것들은 모두 하나 같이 배설물이 좀 그래. 연둣빛, 빨강빛 예쁜 색을 먹고 왜 꺼낼 때는 엉뚱한 것을 꺼내놓는지 모르겠어. 그것도 고약한 냄새를 풍겨가면서 말이지. 물론 나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말이야.

저기 하얗게 하늘거리는 샤스타데이지 좀 봐. 지나가던 백구가 거들기도 하고 들고양이도 들렀다 가곤 했지. 네가 지금 만들고 있는 퇴비보다 더 고약한 가축 분뇨를 먹고 저렇게 순백의 꽃을 피웠어.

참 이상하지? 흙 속엔 도대체 무슨 색 물감이 들어있는 걸까? 내 보기엔 흙 색깔이야 거지반 거기서 거긴데 땅 위로 올려보내는 것을 보면 다 달라. 초록색 빨대를 타고 하얀 물감을 쭉 끌어 올리기도 하고 노란 물감을 올려보내기도 해. 저쪽 장미에는 빨간색 물감을 들였잖아? 덕분에 나는 눈요기도 하고 신바람이 난다고. 너도 그렇지?

숨탄 것들이라고 모두 우리와 같진 않은가 봐. 내 손과 내 입으로 먹는 우리들은 냄새 고약한 배설을 하는데, 그걸 먹고 위로 배설하는 식물들은 아름다운 색깔뿐만 아니라 향기까지 담아서 내보낸다고.

왜 그럴까? 의지와 순응의 차이일까? 탐욕을 누르지 못하고 흰자위를 굴려 가며, 우리는 내가 먹고 싶은 것 먹고 싶은 만큼 내가 선택한 대로 먹잖아. 의지를 당연한 것으로 누리면서 말이지. 하지만 그네들은 세상이 내려주는 대로 받으며 순응할 수밖에. 욕심이라는 의미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흙에서 주는 대로 받고 사는 그들에게서는 알록달록한 향기가 나.

, 그렇구나. 사람들도 음흉한 속셈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서는 은근히 냄새가 나지. 미소 뒤에 감추어진 시기와 질투의 냄새. 배 안에 그득 채운, 남보다 먼저 그리고 위에 서려는 욕심 냄새 말이야. 그들은 모두 위에서 받아먹고 아래로 배출하는 인간들의 냄새라네. 하지만 아래에서 주는 대로 먹고 자란 숨탄 것들은 자신의 욕심 따윈 없어. 그냥 주는 대로 먹고 묵묵히 위로 배출을 하지. 그래서 그들에게서는 향기가 나나 봐. 인간은 또 그 향기를 먹고 냄새를

나도 이제 벌레를 찾아 날아야겠어. 그들은 하얀 개망초 꽃 아래에도 있고 금계국 틈에도 있을 거야. 나도 힘을 내야 그들이 떨군 씨앗들을 여기저기 나르지. 어떡하겠니?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돌아가는 것을.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것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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