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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38. 결혼

결혼

 

교육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용인의 양한례 집에 들렀다. 용기를 내어 가족과 만났다. 그 가족은 모두 군인과 교제한 것을 싫어했다. 그동안 군사 우편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 부대 마크까지 정성들여 수를 놓아 부쳐온 과정이 나로서는 기쁨과 희망을 준 교제였었다고 정식으로 혼인의 의사를 표하여 가족들의 승낙을 받았다. 부대로 돌아와 보니 부대는 주파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직 주파리에서 진지 보수니 도로작업이니 할 일이 꽤 많아 한참 동안 결혼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느 날 대대장에게 결혼에 대해 상의를 했더니 처음에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하면서 생각을 해보자고 말을 끊었다. 괜히 말하였구나 후회했으나 기왕에 말을 한 것이니 기대 반으로 나의 할 일에 몰두했다.

 

그동안에 나는 고향의 부모님에게 편지도 했고 결혼할 뜻을 전했다. 그 후 대대장의 승낙을 받아 정식으로 고향에 휴가를 가서 결혼에 대한 상의를 했다. 물론 부모님은 반대를 하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가정 형편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어머니는 눈물부터 흘리신다. 결혼하자면 준비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양한례 집에서도 피난 갔다 온 지도 얼마 안 되니 간단히 혼례만 치르자고 한 말에 나도 용기를 낸 것이었으나 그래도 형식은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결혼식은 구식으로 (그때는 신식 결혼은 없었다) 용인서 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채단이나 준비하면 된다고 마음먹고 결혼반지, 신부의 옷감만 준비한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그 이상의 것들을 생각한 모양이지만 속수무책이었고 결혼 준비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예물도 준비 못 하신다고 눈물을 흘리신다. 나는 기가 막힌 실정에 괜히 결혼하는 것 아닌가 후회하고 후회했으나 이미 결정된 것을 어떻게 하랴.

그뿐인가. 결혼하면 신부는 우리집으로 와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 아찔했다. 어머니는 그것을 더 걱정하신다.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 또 한 사람의 부담만 늘게 되니. 더더욱 가문의 체면은 무엇이 되나, 그보다 신부집에서 얼마나 실망을 할까. 결혼이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도 사리판단과 현실 파악을 못했을까.

 

그러나 이 일은 수순에 따라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어 부대원의 축복 속에 (부대원 전원의 월급을 모두 축의금으로 받아) 용인에 왔다. 부대대장과 몇몇 장병들이 참석했다. 양한례 집에서는 상상외의 잔치를 베풀어 우리를 놀라게 했고 가마 탄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용인 읍내를 한 바퀴 돌았다. 구경꾼의 숯덩어리 세례를 몇 번씩이나 받으며 나름대로 혼례식은 무사히 끝마쳤다. 부대원은 그날 부대로 돌아가고 나는 그곳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휴가기간이 3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청주로 오기 위해 부대에서 내준 짚차에 신부를 태우고 용인을 떠났다. 가족들은 축복보다 나이 어린 신부를 그 먼 청주의 어느 군인에게 도둑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눈물로 환송하는 것을 본 나는 속으로, ’두고 봅시다.’ 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자신을 갖이고 있었다.

 

청주로 오니 빈한한 가정의 잔치였다. 술과 떡과 부침 김치 그뿐이다. 호기심으로 모여든 동네 사람만이 하객이었다. 같이 온 큰처남은 그사이 집 둘레를 돌아보고 있었다. 부끄러웠으나 모른 척했다. 손님들과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몇 시간만에 잔치를 마쳤다.

그날밤 나는 신부에게 말했다. 이런 가난한 집안에 시집을 와서 고생하게 됐으나 꾹 참어 달라고, 앞으로 좋을 때가 꼭 올 것이라고. 내 나이 27, 신부는 20이었다.

다음날 무심하게도 신부를 놔둔 채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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