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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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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27 2020. 6.27 이유식을 하느라 애를 먹는 모양이다. 얼굴이고 옷이고 온통 치범벅을 해 놓고 손으로 뭉그적거리니 난리가 아니다. 하는 짓이 내 눈엔 귀엽기 그지없지만 한편 걱정도 된다. 새로운 맛에 적응이 되지 않아 잘 받아먹지 않으니 애 엄마가 아예 가지고 놀면서 익숙해지라고 그냥 내버려 두는 모양이다. 저러다가 반복되면 습관이 될까 걱정스럽다. 날이 갈수록 엄마는 점점 힘들어지고 아이를 다루기가 수월찮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시어미라 참견하기가 더 어렵다. 육아 과정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고조된다고 하지 않던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서진이 목소리가 더욱 반갑고 정겹다. 할머니 목소리를 알고 대꾸하는 건 아닐 텐데도 왜 이리 기특한지 모르겠다. 눈에 선하다. 앞니는 얼마나 자랐을까. ..
2020. 5.13 첫 이유식 2020. 5. 13 우리 아기 첫 이유식 이제 이유식을 시작했단다. 무엇이든 손으로 잡으려는데 어설프다.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당겨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본능 그대로다. 손가락의 움직임도 제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움직이는 폼이 미완성이다. 어느 손가락은 쫙 펴고 또 어느 손가락은 반만 편 채다. 열 손가락이 어느 것 하나 협응하지 못하는데, 아가도 이에 별 개의치 않는다. 욕심없는 호기심 투성이다. 그래서 아가들은 예쁜가 보다. 어른이 이렇게 어설픈 행동을 한다면 뭇 사람들에게 핀잔을 받을 테고, 어린아이가 뭐든 어른처럼 능숙하다면 관심은 받을지언정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격이 있고 분수가 있는 듯하다. 젊은 사람이 늙은이처럼 행동하는 것도 거슬리지만 노인네가..
2020. 4.17 2020. 4. 17 인생 첫 도전 뒤집기에 성공하다. 다리를 번쩍 들어 한쪽으로 쏠리니 금세 몸이 뒤집어질 듯하다. 하지만 110일이 된 아기에겐 여간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낑낑거리며 용을 써보지만 아직은 어림없다. 엉덩이만 조금 건드려주면 꼴까닥 넘어가련만 제 엄마도 이 할미도 바라보기 안타깝다.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으쌰으쌰 해보지만 아직은 역부족인가. 아가도 힘이 드는지 결국 울음보를 터뜨린다.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인생 첫 도전이다. 함께 바라보는 우리도 같은 호흡을 하고 있다. 며칠 낑낑 대더니 드디어 성공했다. 몸을 활처럼 뒤로 젖히고 한쪽 다리를 반대편으로 넘기고 어깨에 힘을 주며 머리를 드니 성공이다. 팔만 빼면 되는데 이게 또 쉽지 않다. 절반의 성공! 오늘 가서 보니 며칠 새..
목욕하는 서진이 목욕하는 서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장을 한 얼굴이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비누칠을 해주는 아빠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맑음이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사의 거울이다. 아빠에게 모든 걸 맡긴 채 편안한 모습이다. 살이 올라 마치 부풀린 풍선처럼 팔이 포동포동하다. 만져보고 싶지만, 행여 흠집이 날까 겁난다. 목욕할 때의 얼굴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때 묻지 않은 동그란 눈, 자그마한 입술엔 아직 주름도 없이 탱글하다. 사과처럼 볼록한 두 볼에 파묻힌 자그마한 코. 자두처럼 앙증맞은 턱살. 그래서 ‘사과 두 개, 자두 하나’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백일이 지나 2020.03.16. 며칠 전 백일을 치르느라 서진이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사진마다 표정이 영 마뜩찮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곤히 잠든 것을 보니 퍽이나 힘들었나 본데 한 번을 울지도 않고 잘 버텨주었다. 아가를 핑계로 어른들의 잔치가 된 것 같아 미안하다. 그래도 가족끼리 조촐하게 사진이나 찍자는 거였는데……. 이것마저 안 하면 이다음에 너무 서운하지 않겠는가 해서 벌였던 것이다. 다행히 사진 한두 장은 성공한 것 같다. 할미가 직접 찍어준 사진이라 더욱 흐뭇하다. 백일을 지나기가 무섭게 서진이가 부쩍 큰 느낌이다. 오늘 보내온 영상을 보니 벌써 장난감에 집중하는 모습이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아직 뒤집지도 못하고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세상 모르는 아가인데 색깔이 보이고 움직임이 보이고 소리가..
탄생 2019. 12.3 2019.12.03. (화) 아기별이 세상으로 내려왔다. 하나의 점으로 처음 보였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작은 점 하나가 생명이라니. 산기가 보이는데도 며늘아이는 아직 진통이 없다 했다.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안절부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딱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진통이 시작되었단다. 분만실에서 혼자 용을 쓰고 있을 며늘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 아가는 이미 어제부터 세상 밖으로 나가겠노라 신호를 보냈단다. 이슬이 비치고 하루 만에 양수를 터뜨리고 아가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서 빛을 보고 싶었을 게다. 바깥세상이 궁금했을 게다. 며늘아이는 지금쯤 호흡이 가빠지고 있으리라. 뼈가 으스러지고 몸속의 모든 기운을 쏟아내고 있을 게다. 진땀을 흘리며 ..